[인터뷰] 운동 단절 여성 위한 '갈라진앞머리' 기획자 "땀으로 앞머리를 갈라 봅시다"
"달려! 끝까지 공 봐!"
선수들이 잔디밭을 구르는 공을 매섭게 쫓았다. 힘찬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12월 9일, 구리시의 한 야외 풋살장에서 '위밋업 프렌들리 풋볼 리그'가 개최되었다. 여성 풋살인들을 위한 아마추어 친선 대회로, '갈라진앞머리'도 경기에 출전했다.
'갈라진앞머리'는 지난해 의정부문화재단의 '백만원실험실'에서 시작한 여성 운동 프로젝트이다. 백만원실험실은 의정부를 재미있고 쓸모있게 만드는 실험에 100만 원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다. 갈라진앞머리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운동 클래스를 열었다. 참가 신청 조건은 단 하나, 여자면 된다. 운동을 배우고 싶은 여성이라면 지역도 나이도 상관없이 갈라진앞머리에서 무료로 운동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본래 1년짜리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나, 인기에 힘입어 2년째 운영을 이어 나가고 있다. 프로젝트 지원금도 1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훌쩍 늘었다.
'갈라진앞머리'의 기획자이자 초대 운영자인 신화(가명, 30대)씨와 해진(가명, 30대)씨를 만나기 위해 풋볼 리그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풋살 대회에 참가한 <갈라진앞머리>. 참가자들이 화이팅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신화씨와 해진씨는 다른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잡담을 나누다 우연히 운동이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했고, 그 뒤로 운동 메이트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들은 '왜 여성들은 함께 모여 운동하지 않는지' 늘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가 여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후부터 운동을 중단한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땀으로 갈라진 앞머리 때문에 놀림당한 뒤로 운동과 서서히 멀어진 것이다. 이러한 운동 단절 여성들을 위해 두 사람은 갈라진앞머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제는 땀으로 마음껏 앞머리를 갈라 보자는 의미"라고 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타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운영자 자리를 넘겨줬다. 그러나 여전히 참가자로 활동하며 갈라진앞머리 운영을 돕고 있다. 두 사람은 머쓱하게 웃으며 "시작은 순전히 자기만족이었다"고 했다.
"둘이서만 운동하니까 체계도 없고 점점 지겨웠거든요. (웃음) 어느 정도였냐면 농구를 배우고 싶었는데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만화책을 펴놓고 거기 나오는 훈련 장면을 둘이 무작정 따라 했어요. 그만큼 같이 운동할 사람들과 강사님이 절실했죠." (신화)
"그러다가 우연히 의정부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시민 기획 프로젝트를 알게 됐어요. 참가자를 모아서 재단의 도움으로 무료 수업을 열고, 거기서 우리도 같이 배우면 되겠다 싶었어요." (해진)
여자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 필라테스, 스피닝 등이 흔히 떠오른다. 모두 실내에서 하는 개인 운동이다. 그러나 갈라진앞머리는 팀 운동을 가르친다. 테그 럭비에서 시작해 농구, 축구, 풋살 등을 가르쳐 왔다.
"저도 혼자 하는 운동은 많이 해봤거든요. 근데 문득 다 같이 땀 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에 나온 이후로 팀에 속할 기회가 없었어요. 특히나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면 팀으로 지낼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여성에게도 속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화)
"여자들이 많이 하는 운동은 보통 터치나 태클이 없어요. 근데 팀 운동은 조금씩이라도 몸싸움이 있거든요. 그렇게 남들과 부딪혀 보면 내 몸의 감각을 조금씩 깨우쳐요. '오? 버틸 만하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네?' 이렇게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자신감도 생겨요. 그런 걸 경험해 보고 싶었고, 경험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해진)
갈라진앞머리는 수강생뿐만 아니라 강사진까지 모두 성별이 같다. 은퇴한 여성 선수를 연결해 주는 사회적 기업 '위밋업 스포츠'를 통해 코치를 초빙한다.
"기왕 배우는 김에 실력을 갖춘 코치한테 가르침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밋업 스포츠를 통해 강사를 알아봤는데, 국가대표 출신 강사님들도 수강료가 엄청 저렴한 거예요. 여성 선수에게는 코칭기회가 얼마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실력 있는 분들께 일감을 몰아 드리고 싶어 여성 코치님들을 찾게 됐어요. 상부상조인 셈이죠." (신화)
갈라진앞머리에는 독특한 룰이 하나 있다. 바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기'이다. 상대의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
"갈라진앞머리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요. 누구나 스무살처럼 뛰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서로를 이름으로만 불러요. 언니, 동생 하려면 나이부터 따져야 하니까요." (신화)
"처음에는 이름 부르는 걸 어색하게 느끼지만 다들 금방 익숙해지세요. 특히 시합 중에는 마음이 급해져서 님 호칭 없이 이름만 부르기도 해요. '해진, 패스! 신화, 여기!' 이렇게요. (웃음)" (해진)
갈라진앞머리가 이어진 지 벌써 2년째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특히 연습장을 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자주 앓는다.
"황금시간대인 주말 오전은 조기축구회와 청소년 클래스가 꿰차고, 저희는 꼭두새벽 아니면 늦은 밤에나 연습해요. 심지어 어느 체육관은 대여비를 요구했어요. 문화재단 측에서 지불했는데도요. 처음엔 깜빡 속아서 사비로 입금했다니까요." (신화)
"요새는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할 때 말고는 버려진 족구장에서 연습해요. 대회 준비도 거기서 했어요." (해진)
이렇듯 어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힘든 기억보단 즐거운 기억이 훨씬 많다고 했다. 신화씨와 해진씨는 작년에 개최했던 야유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참가자들을 캠핑장에 모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았어요. 바비큐도 먹고, 게임도 하고, 불멍도 때렸죠." (신화)
"그때 처음으로 후원도 받았어요. 참가자 중에 한 분이 인센스 스틱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인센스 받침대까지 손수 제작해 주셨어요. '검은 앞머리 파뿌리 앞머리 될 때까지'라고 새겨진 그릇인데,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당시의 기억이 너무 즐거워서 올해 10월에도 (야유회를) 열었어요." (해진)
그들은 참가자들이 갈라진앞머리를 통해 주체성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안에서는 엄마나 딸같은 역할이 하나씩 주어져 있잖아요. 운동할 때만큼은 그냥 한 명의 멤버로서 동등하게 참여하길 바랐어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듯, 필드에서는 그냥 나로 존재하는 거죠. 직함없이 담백하게." (신화)
수많은 참가자가 갈라진앞머리와 함께 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선(가명)님이다. 갈라진앞머리에 먼저 참가했던 따님의 소개로 함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그는 어느새 팀 에이스로 거듭났다.
"보통 엄마들은 엄마로 불리지 이름으로 불릴 일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그분을 '경선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좋아요." (신화)
"처음 오셨을 땐 몸 쓰는 법을 하나도 모르셨거든요. 그런데 이젠 어떤 운동이든 척척 해내세요. 이번 풋살 대회에도 같이 출전했어요." (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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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진 앞머리>의 현수막. ‘구르는 공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슬로건도 경선 님 덕분에 탄생하게 됐다. 그가 지나가듯 던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에서 착안했다. |
갈라진앞머리의 운영자로 활동했던 시간은 신화씨와 해진씨에게도 소중한 가치를 남겼다.
"예전에는 '같이의 가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희는 승부욕도 많고 성질도 급하거든요. 사람이 많으면 빨리 가지 못한다고 여겨왔었죠. 그런데 이제는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느려도 마음이 풍족해요. 살면서 자주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신화)
"단순히 우리가 즐기려고 클래스를 열었을 뿐인데 참가자분들은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제는 친구들끼리 따로 모여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분은 축구팀까지 창단하셨어요. 기획은 저희가 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참가자분들이구나 싶었어요." (해진)
그들은 내년에도 프로젝트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의정부문화재단이 예산을 편성해줄지는 미지수지만, 신화씨와 해진씨는 내년 계획을 벌써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정식으로 팀을 창단하려고요. 풋살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설사 갈라진앞머리가 계속되지 못한다고 해도 풋살팀은 독자적으로 운영할 거 같아요. 또 저희만의 유니폼을 만들어 함께 입고 싶네요. 무엇보다 우리만의 홈구장을 가지고 싶습니다. 주짓수나 배구 같은 새로운 종목도 가르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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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진앞머리>의 단체사진. 축구화를 신고 모여 사진을 찍었다. |
여성이 운동과 친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은 '공공의 지원'을 강조했다.
"여자들이 운동을 싫어한다기 보단 운동과 멀어진다는 표현이 더 맞는 거 같아요. 여성들은 운동장에서 밀려나는 경험을 겪으면서 이곳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고, 운동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돼요. 근데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나마 시도하기 쉽잖아요. 갈라진앞머리는 재단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클래스를 여는 덕분에 장벽이 훨씬 낮아요. 이렇게 공공의 지원이 있으면 여자들이 운동을 시작하기 훨씬 수월해질 거 같아요." (신화)
아직은 땀 흘리기가 어색한 여성들에게 신화씨와 해진씨는 주체성을 가지고 계속 시도하라고 응원했다.
"주체성을 가지고 (운동을) 시도해 보면 좋겠어요. 한 번쯤은 나만의 길을 가보세요. 생활 체육인으로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뭐든 도전하길 바랍니다." (신화)
"힘들어도 세 번만 시도해 보세요. 처음에 운동할 때는 어색하고, 몸 쓰는 법을 모르니까 안 맞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올림픽도 연습하라고 4년이나 시간을 주잖아요. 편하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분명 재밌을 거예요." (해진)
원문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8760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인터뷰] 운동 단절 여성 위한 '갈라진앞머리' 기획자 "땀으로 앞머리를 갈라 봅시다"
"달려! 끝까지 공 봐!"
선수들이 잔디밭을 구르는 공을 매섭게 쫓았다. 힘찬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12월 9일, 구리시의 한 야외 풋살장에서 '위밋업 프렌들리 풋볼 리그'가 개최되었다. 여성 풋살인들을 위한 아마추어 친선 대회로, '갈라진앞머리'도 경기에 출전했다.
'갈라진앞머리'는 지난해 의정부문화재단의 '백만원실험실'에서 시작한 여성 운동 프로젝트이다. 백만원실험실은 의정부를 재미있고 쓸모있게 만드는 실험에 100만 원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다. 갈라진앞머리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운동 클래스를 열었다. 참가 신청 조건은 단 하나, 여자면 된다. 운동을 배우고 싶은 여성이라면 지역도 나이도 상관없이 갈라진앞머리에서 무료로 운동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본래 1년짜리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나, 인기에 힘입어 2년째 운영을 이어 나가고 있다. 프로젝트 지원금도 1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훌쩍 늘었다.
'갈라진앞머리'의 기획자이자 초대 운영자인 신화(가명, 30대)씨와 해진(가명, 30대)씨를 만나기 위해 풋볼 리그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풋살 대회에 참가한 <갈라진앞머리>. 참가자들이 화이팅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신화씨와 해진씨는 다른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잡담을 나누다 우연히 운동이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했고, 그 뒤로 운동 메이트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들은 '왜 여성들은 함께 모여 운동하지 않는지' 늘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가 여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후부터 운동을 중단한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땀으로 갈라진 앞머리 때문에 놀림당한 뒤로 운동과 서서히 멀어진 것이다. 이러한 운동 단절 여성들을 위해 두 사람은 갈라진앞머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제는 땀으로 마음껏 앞머리를 갈라 보자는 의미"라고 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타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운영자 자리를 넘겨줬다. 그러나 여전히 참가자로 활동하며 갈라진앞머리 운영을 돕고 있다. 두 사람은 머쓱하게 웃으며 "시작은 순전히 자기만족이었다"고 했다.
"둘이서만 운동하니까 체계도 없고 점점 지겨웠거든요. (웃음) 어느 정도였냐면 농구를 배우고 싶었는데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만화책을 펴놓고 거기 나오는 훈련 장면을 둘이 무작정 따라 했어요. 그만큼 같이 운동할 사람들과 강사님이 절실했죠." (신화)
"그러다가 우연히 의정부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시민 기획 프로젝트를 알게 됐어요. 참가자를 모아서 재단의 도움으로 무료 수업을 열고, 거기서 우리도 같이 배우면 되겠다 싶었어요." (해진)
여자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 필라테스, 스피닝 등이 흔히 떠오른다. 모두 실내에서 하는 개인 운동이다. 그러나 갈라진앞머리는 팀 운동을 가르친다. 테그 럭비에서 시작해 농구, 축구, 풋살 등을 가르쳐 왔다.
"저도 혼자 하는 운동은 많이 해봤거든요. 근데 문득 다 같이 땀 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에 나온 이후로 팀에 속할 기회가 없었어요. 특히나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면 팀으로 지낼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여성에게도 속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화)
"여자들이 많이 하는 운동은 보통 터치나 태클이 없어요. 근데 팀 운동은 조금씩이라도 몸싸움이 있거든요. 그렇게 남들과 부딪혀 보면 내 몸의 감각을 조금씩 깨우쳐요. '오? 버틸 만하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네?' 이렇게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자신감도 생겨요. 그런 걸 경험해 보고 싶었고, 경험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해진)
갈라진앞머리는 수강생뿐만 아니라 강사진까지 모두 성별이 같다. 은퇴한 여성 선수를 연결해 주는 사회적 기업 '위밋업 스포츠'를 통해 코치를 초빙한다.
"기왕 배우는 김에 실력을 갖춘 코치한테 가르침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밋업 스포츠를 통해 강사를 알아봤는데, 국가대표 출신 강사님들도 수강료가 엄청 저렴한 거예요. 여성 선수에게는 코칭기회가 얼마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실력 있는 분들께 일감을 몰아 드리고 싶어 여성 코치님들을 찾게 됐어요. 상부상조인 셈이죠." (신화)
갈라진앞머리에는 독특한 룰이 하나 있다. 바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기'이다. 상대의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
"갈라진앞머리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요. 누구나 스무살처럼 뛰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서로를 이름으로만 불러요. 언니, 동생 하려면 나이부터 따져야 하니까요." (신화)
"처음에는 이름 부르는 걸 어색하게 느끼지만 다들 금방 익숙해지세요. 특히 시합 중에는 마음이 급해져서 님 호칭 없이 이름만 부르기도 해요. '해진, 패스! 신화, 여기!' 이렇게요. (웃음)" (해진)
갈라진앞머리가 이어진 지 벌써 2년째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특히 연습장을 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자주 앓는다.
"황금시간대인 주말 오전은 조기축구회와 청소년 클래스가 꿰차고, 저희는 꼭두새벽 아니면 늦은 밤에나 연습해요. 심지어 어느 체육관은 대여비를 요구했어요. 문화재단 측에서 지불했는데도요. 처음엔 깜빡 속아서 사비로 입금했다니까요." (신화)
"요새는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할 때 말고는 버려진 족구장에서 연습해요. 대회 준비도 거기서 했어요." (해진)
이렇듯 어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힘든 기억보단 즐거운 기억이 훨씬 많다고 했다. 신화씨와 해진씨는 작년에 개최했던 야유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참가자들을 캠핑장에 모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았어요. 바비큐도 먹고, 게임도 하고, 불멍도 때렸죠." (신화)
"그때 처음으로 후원도 받았어요. 참가자 중에 한 분이 인센스 스틱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인센스 받침대까지 손수 제작해 주셨어요. '검은 앞머리 파뿌리 앞머리 될 때까지'라고 새겨진 그릇인데,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당시의 기억이 너무 즐거워서 올해 10월에도 (야유회를) 열었어요." (해진)
그들은 참가자들이 갈라진앞머리를 통해 주체성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안에서는 엄마나 딸같은 역할이 하나씩 주어져 있잖아요. 운동할 때만큼은 그냥 한 명의 멤버로서 동등하게 참여하길 바랐어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듯, 필드에서는 그냥 나로 존재하는 거죠. 직함없이 담백하게." (신화)
수많은 참가자가 갈라진앞머리와 함께 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선(가명)님이다. 갈라진앞머리에 먼저 참가했던 따님의 소개로 함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그는 어느새 팀 에이스로 거듭났다.
"보통 엄마들은 엄마로 불리지 이름으로 불릴 일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그분을 '경선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좋아요." (신화)
"처음 오셨을 땐 몸 쓰는 법을 하나도 모르셨거든요. 그런데 이젠 어떤 운동이든 척척 해내세요. 이번 풋살 대회에도 같이 출전했어요." (해진)
갈라진앞머리의 운영자로 활동했던 시간은 신화씨와 해진씨에게도 소중한 가치를 남겼다.
"예전에는 '같이의 가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희는 승부욕도 많고 성질도 급하거든요. 사람이 많으면 빨리 가지 못한다고 여겨왔었죠. 그런데 이제는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느려도 마음이 풍족해요. 살면서 자주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신화)
"단순히 우리가 즐기려고 클래스를 열었을 뿐인데 참가자분들은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제는 친구들끼리 따로 모여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분은 축구팀까지 창단하셨어요. 기획은 저희가 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참가자분들이구나 싶었어요." (해진)
그들은 내년에도 프로젝트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의정부문화재단이 예산을 편성해줄지는 미지수지만, 신화씨와 해진씨는 내년 계획을 벌써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정식으로 팀을 창단하려고요. 풋살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설사 갈라진앞머리가 계속되지 못한다고 해도 풋살팀은 독자적으로 운영할 거 같아요. 또 저희만의 유니폼을 만들어 함께 입고 싶네요. 무엇보다 우리만의 홈구장을 가지고 싶습니다. 주짓수나 배구 같은 새로운 종목도 가르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신화)
여성이 운동과 친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은 '공공의 지원'을 강조했다.
"여자들이 운동을 싫어한다기 보단 운동과 멀어진다는 표현이 더 맞는 거 같아요. 여성들은 운동장에서 밀려나는 경험을 겪으면서 이곳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고, 운동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돼요. 근데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나마 시도하기 쉽잖아요. 갈라진앞머리는 재단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클래스를 여는 덕분에 장벽이 훨씬 낮아요. 이렇게 공공의 지원이 있으면 여자들이 운동을 시작하기 훨씬 수월해질 거 같아요." (신화)
아직은 땀 흘리기가 어색한 여성들에게 신화씨와 해진씨는 주체성을 가지고 계속 시도하라고 응원했다.
"주체성을 가지고 (운동을) 시도해 보면 좋겠어요. 한 번쯤은 나만의 길을 가보세요. 생활 체육인으로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뭐든 도전하길 바랍니다." (신화)
"힘들어도 세 번만 시도해 보세요. 처음에 운동할 때는 어색하고, 몸 쓰는 법을 모르니까 안 맞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올림픽도 연습하라고 4년이나 시간을 주잖아요. 편하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분명 재밌을 거예요." (해진)
원문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8760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